미학 오디세이 1권 / 에셔의 도마뱀과 원시예술의 자연주의

에셔의 그림과 함께 탐험하는 미학의 세계.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을 한장한장 분석하며 읽어보려 한다. 10년이 지난 책이지만 아직도 꽂혀있는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본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은 에셔의 작품을 기반으로 어렵지만 어렵지 않게 미학에 접근을 할 수 있게 한다. 간단히 에셔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네덜란드의 판화가이며 수학과 논리학의 난제를 다룬 독특한 작품세계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교묘한 수학적 계산에 따라 작품 활동을 했는데, 특히 뫼비우스의  띠(이상한 고리)는 에셔가 좋아하는 주제였다. 미국의 인지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다룬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에서 에셔의 이상한 고리, 괴델의 불완전성의 고리,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을 한데 묶어 "영원한 황금실"이라 불렀다.

 

에셔가 주로 다루는 주제들을 저자(진중권)는 대략 열가지로 분류를 하고 있다. 여러 세계를 넘다듦, 평면의 균등분할, 거울에 비춘 피사체, 변형, 카레이도치클루스와 나선형, 3차원 환영의 파괴, 불가능한 형태, 무한성의 접근, 이율배반, 이상한 고리(뫼비우스의 띠). 에셔의 1943년 도마뱀 (석판)을 보자. 도마뱀들은 그림에서 나와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 에셔는 평면과 공간의 대립을 지워버림으로써 가상과 현실을 나누는 두꺼운 벽을 무너뜨린다. 가상과 현실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건 인류의 오랜 꿈이 이였다. 먼저 원시 예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그러기 위해선 우선 깊숙한 동굴에 들어아가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의 기원에 대해서 반문하게 될 것이다. 예술은 어디에서? 왜 원시인은 동굴속 깊은 곳에 그림을 남겨놨을까? 저자는 여기서 살인 사건의 비밀을 깨야 한다고 한다. 가상과 현실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유년기 인류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함께 원시 예술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그 시절 원시시대의 예술은 곧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 뒤 사람들이 점차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게 되자, 마법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현실 고증이 필요하다. 19세기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상처 입은 들소의 그림을 보자. 이 동굴벽화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위작이라 생각했다. 1만 5천 년 전 구석기시대 미개인이 어떻게 이렇게 생생히 묘사하리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술사에서 이정도의 표현을 찾아보려면 한참이나 뒤로 내려와야 한다. 그 뒤 유럽과 아프리카의 여러 곳에서도 놀라운 사실성을 가진 벽화들이 발견되었다. 덕분에 알타마라 동굴의 벽화는 위작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훗날 개화된 인류도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천 년의 걸친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신석기인이 구석기인보다 보다 뛰어난 정신적 능력을 가졌지만 자연주의적 묘사를 발전시키기는커녕 관습화한 기하학적, 추상적 양식으로 후퇴(?)를 했다고 하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서양미술사의 저자 곰브리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선 자연주의적 묘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만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화풍을 자연주의 화풍이라고 한다. 쉽게 생각하면 풍경화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어서 이야기를 하자면 곰브리치에 의하면 인간은 사물을 지각할 때 눈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하게 된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만 시지각을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결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고, 그리하지 않은 부분은 작게 또는 빼버리는 말 그대로 아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까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릴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색안경을 끼지 않았던 벌거벗은 눈이야 말로 그들의 놀라운 자연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구석기인의 높은 수준의 자연주의가 그들의 낮은 수준의 지적능력으로 설명이 되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 인간은 농경의 시작과 정착생활을 하게 되어간다. 농경생활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농경은 인간이 이미 변화무쌍한 자연현상들 속에서 어떤 질서를 발견했을을 의미한다.

 

그들은 눈, 비, 더위, 추위, 서리, 가뭄, 우박, 태풍, 홍수 등 시시각각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연현상은 혼란스럽지만 수천, 수만 번 반복되고 교차하는 가운데 어떤 공통점을 찾고 거기서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뽑아 내게 되었다. 이런 추상적 개념적 사유가 신석기시대의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설명해 준다. 이는 일찍이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여 토지의 경계선을 지워버리는 이집트에서 기하학이 발전했던 원리와 같다. 추상적, 기하학적 사유는 자연에 대한 지배를 의미하므로 구석기인들의 자연을 따르는 게 아닌 지배로서 위에서 언급되었던 벌거벗은 눈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신석기인들의 눈은 점점 더 개념의 지배를 받게 되고 보이는 대로가 아닌 아는 대로 묘사하게 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는 벌써 두 가지 대립되는 재현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자연주의적 양식과 신석기시대의 기하학적 양식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미개 부족들은 신석기 단계에 있기에 대부분 추상적, 기하학적 양식을 보여주는데 반하여, 아직 구석기 단계에 있는 부시맨에게선 자연주의적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두양식의 대립은 오랫동안 미술사를 지배하게 되는데 이 대립이 인류 최초의 문명세계에도 새로운 형태로 되풀이된다.